‘엘시스테마, 저도 처음에는 생소했어요.’

 

음악을 통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함께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베네수엘라의 음악 교육 시스템, 엘시스테마! 보통의 오케스트라와 도대체 어떤 점에서 다를까요?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꿈의 오케스트라 (El Sistema Korea) 사업이 시작된 지 이제 3년이 지났는데요.

 

2012년 우수거점 기관 중 하나로 선정된 꿈의 오케스트라 익산 <꿈과 희망의 오케스트라>도 처음에는 엘시스테마의 교육철학이나 방식이 조금 생소해서 운영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합니다. 이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익산문화재단의 이태호 국장도 엘시스테마만의 특별한 가치가 처음에는 잘 와 닿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그 가치에 공감하고 아이들을 위해 더 좋은 운영방식을 고민하고 있는 이태호 국장,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요? 지금부터 이태호 국장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조금 독특한 이력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음악이 아니라 미술을 전공하셨는데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을 운영하고 계시더라고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익산문화재단에 오기 전에 제가 4년 정도 전주문화재단에 있었어요. 그때 우연히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이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 공모를 알게 돼 기획안을 만들었죠.

 

솔직히 말하면 그때만 해도 이게 어떤 사업인지, 이렇게 좋은 사업인지는 잘 몰랐어요.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한 사회적 취약계층 아동들에게 음악을 접하는 기회를 주어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 뭐 그 정도로만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더 큰 목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 사업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것 같아요.

 

꿈의 오케스트라의 ‘더 큰 목표’라 하면 어떤 것일까요?

 

처음에는 워크숍이나 세미나를 가더라도 교수법 같이 엘시스테마의 한 단면만을 봤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한번 해외 사례를 공유하는 워크숍에서 베네수엘라 엘시스테마의 관계자 분이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엘시스테마 단원들은 지휘자 두다멜도 나왔지만, 자원봉사자들도 있고, 악기를 보수해주는 사람도 있고 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 분야에서 제 역할을 잘하면 된다.’

 

이 말을 듣고 불현듯 깨닫게 되었던 것 같아요.

 

분명히 재능 있는 아이들도 발굴이 될 수 있죠. 그렇지만 모두가 음악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아이들이 오케스트라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사회를 미리 배워나간다는 점이 이 사업의 굉장히 큰 매력이자 목표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소극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 입장에만 집중하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수업이 끝나면 뒷정리를 돕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에서 아이들의 변화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나요?

 

성남에 사는 아이였어요. 부모님이 맞벌이어서 집에 동생들하고 그 아이만 있었어요. 그런데 불이 난 거예요. 아이들만 방치해두면 안되겠다 싶어서 부모님이 친척들이 있는 익산으로 아이들을 보냈고, 그 후에 우리 오케스트라에 함께하게 되었어요. 처음에 왔을 때는 친구들도 없었고 굉장히 소극적이었는데, 친구들과 가까워지면서 점점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변하더라고요. 동생들도 같이 오케스트라에 참여했고요. 그 부모님도 아이들의 변화한 모습을 보고 강사들에게 감사편지를 보내오셨어요.

 

강사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분들이기도 하고요.

 

결국 이 사업의 성패는 강사들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꿈의 오케스트라 익산의 경우는 클나무 오케스트라와 익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강사들이 와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2010년부터 함께했던 강사들이 지금도 계세요. 이것이 저희 사업의 강점이라고 봐요. 강사들이 갖고 있는 공감대와 노하우가 결국 프로그램의 힘인데, 처음부터 이런 것이 갖추어지지는 못했거든요.

 

강사들이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공식적인 워크숍에 못갈 때가 있어요. 그 때는 제가 대신 가기도 했는데, 가서 느끼게 되는 것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래서 강사들도 의무적으로 참석하게 했어요. 그랬더니 강사들도 직접 이 사업의 의미를 느끼는 거예요. 단순하게 아이들에게 테크닉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또 3~4년 이상 지속적으로 하다보니 선생과 제자가 아니라 언니, 누나와 같은 관계가 형성되더라고요.

 

 

 

강사들이 이제는 자발적으로 수업 전에 커피 타임을 가지면서 노하우를 공유하고, 아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충분히 동력을 갖추어 나가고 있는 셈이죠.

 

그리고 강사들의 동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익산에서는 별도의 워크숍을 해마다 다섯 번 정도 가요. 강사들끼리 유대감을 형성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상급학교로 진학한 아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줄 것인지, 새로운 파트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수업 운영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서로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예요. 또 저희보다 더 잘 하고 있는 다른 지역의 사례를 탐방하러 가기도 하고, 지난번에는 부천의 한 감독님을 모셔다가 세미나를 열기도 했어요.

 

보통의 오케스트라와 꿈의 오케스트라가 지향하는 바가 굉장히 다르잖아요. 국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것을 머리로는 이해를 해도, 강사들이 교육 철학을 체화하는데 좀 시간이 걸렸을 것 같아요.

 

오래 걸려요. 저도 엘시스테마 정신을 머리로는 이해를 했지만, 가슴으로 느끼기 까지는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특히 이번 합동연주처럼 오디션을 앞두고 있으면 서로 경쟁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음악 감독님이나 강사들이 연주 자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죠. 그렇지만, 아이들보다 연주자체가 우선시 되면 안되는 것은 분명해요.

 

사실 신규 기관들이 워크숍 같은 자리에서 교수법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해요. 그런데 근본적인 엘시스테마의 목표나 지향점, 가치나 이런 것들을 잘 모르면 아이들 보다 ‘오케스트라’ 자체가 목적이 되고, 수업의 목표도 악기 연주로만 향하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꿈의 오케스트라는 오케스트라라는 하나의 방법을 차용한 것이지, 오케스트라 자체가 목표가 아니거든요.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누군가가 설명해준다고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도 최근 들어서야 이해하게 된 부분인걸요. 지금도 계속 스코틀랜드나 베네수엘라에서 그들의 경험을 갖고 이야기를 한다 해도 명확한 답을 해주지 않아요. 그건 자기들만의 노하우를 알려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느끼고 체감하지 않으면 사실 명확하게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이죠. 그리고 지역마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 다르니까요. 결국 본인들이 계속 고민하고 느껴야하는 거죠. 강사와 음악감독들을 의무적으로 워크숍에 참여시킨 것도 이런 이유랍니다. 2011년 후반부터는 음악감독님한테 내년부터 참여 안하면 이 사업 같이 안하겠다는 얘기까지 했어요. 그만큼 중요한 문제니까요.

 

저희도 2011년부터 변화를 시작했고, 작년에서야 완전히 그 부분을 체득하게 되었어요. 이것을 공유하기까지 한 3년 걸리더라고요. 다행히 지금은 대다수의 강사들이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의 목적과 가치에 공감을 하고 있고, 신규 선생님들이 와도 금방 이해하게 돼요.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신규로 오는 사람들도 똑같이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리겠죠.

 

 

 

회의중인 이태호 국장과 지도강사들

 

엘시스테마 교육은 합주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들었어요. 사실 이런 방식이 한국에서는 조금 생소해서 적용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땠나요?

사실 지난 2월에 열린 합동 연주 같은 경우도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결국에는 해 냈지만요. 합주에 대한 부분을 저도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어요. 곡도 완전히 소화 못하는데 왜 합주를 하라고 할까. 차라리 파트별로 연습을 더 많이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합주를 하다보면 아이들이 내가 못하는 부분도 엉겁결에 친구들을 따라 하더라고요. 스스로 모자라는 부분, 또 잘 하는 부분을 알고 있기에 서로서로 옆에서 가르쳐주고요. 선생님들이 요구를 한 것도 아닌데, 잘 하는 아이가 조금 못하는 아이를 자발적으로 또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그런 부분들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정말 스펀지 같아요. 이제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는 편이에요.

 

오케스트라도 하나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애착을 갖고 꾸준히 참여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은데, 요즘 아이들이 워낙 바쁘기도 하잖아요. 출석관리가 잘되지 않으면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이런 문제들이 있었나요?

 

네, 저희도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그래서 3회 무단결석을 하면 자동으로 다음 해에 참여할 수 없게 했는데, 아이들한테는 그 점을 아무리 설명해도 잘 안 지켜지잖아요. 그래서 부모님을 동반한 면접을 하게 됐어요. “아이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혹은 부모님께서 자극을 주거나 관심을 두지 않으면 아이들이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부모님들에게 최대한 양해를 구했죠. 그랬더니 이전까지는 해마다 40~50%가, 만약 50명을 뽑으면 25명에서 30명만 남았었는데, 작년 같은 경우 기존에 참여했던 아이들이 거의 다 남게 되었어요.

 

또 올해는 새로 참여하게 된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오케스트라 전체가 환영의 의미로 직접 연주를 했어요.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새로 들어오게 된 아이들도 빨리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싶잖아요. 그렇게 동기 유발을 해 주고 나니 아이들이 절대로 안 빠지더라고요.

 

이번에는 조금 다른 질문인데요, 실질적인 사업 운영에 있어 예산이 마련되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상당히 흔들릴 수 있으니까요. 익산에서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따로 준비하고 계신 것이 있나요?

 

아, 중요한 부분이에요. 자체 예산을 마련하지 못한 경우 중앙에서 주는 보조금이 없어지면 사업을 못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익산의 경우는 국가에서 보조금이 끊길 경우를 전제로 자체 예산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2011년부터 3천만 원씩 하다가 올해는 4천 5백만 원으로 올렸죠. 사실 올해는 재단 사업비가 다 줄었거든요. 그런데 오케스트라 사업 예산만 제가 4천 5백만 원으로 올렸어요. 50%를 늘린 셈인데, 이제 시나 재단에서도 이 사업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 입장에서 보고 생각해보면 모든 방법이 나와요. 교육 방법, 이 사업에 대한 목표, 가치는 물론이고 자체 예산을 왜 마련해야 하는지 답을 얻을 수 있어요. 만약 예산이 부족하거나 지원금이 1년 만에 뚝 끊겨 버리면 아이들은 더 이상 갈 데가 없게 되어요.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죠.

 

 


아이들과 함께있는 이태호 국장


이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에 대한 국장의 애정과 열정이 얼마나 큰지 느껴집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지역 담당자나 선생님들께도 한 말씀 부탁드려요.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아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혹시 오케스트라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고요. 이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은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건강하게 소통하고 성장하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라날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 교육을 활용하는 것이지 오케스트라 운영 그 자체가 최종목표는 아니라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언급하는 이태호 국장님의 모습에서 꿈의 오케스트라에 대한 애정과 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열정과 관심이 지금의 ‘꿈과 희망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글 | 아동 청소년 오케스트라 교육 리포터_강수경

지휘자와 단원은 물론 청중까지, 모두가 즐기는 음악회를 꿈꾸는 저는 아이들의 꿈이 기적을 만드는 그날까지, 열정을 담아 꿈의 오케스트라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