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인은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다. 즉,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개인과 집단 간에 추상적 이미지를 정확히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구체화하기 위한 하나의 솔루션인 것이다. 잘 알다시피 모든 솔루션에는 일종의 동작원리랄까 법칙이 존재한다.

 

이 작동 원리를 찾고자 한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정확하고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갖춰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역사철학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관점을 뒷받침 해줄 배경지식 정도는 필요하다. 실제로 뛰어난 디자이너는 한결같이 확고하게 시대정신을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처럼 현실생활 속의 그래픽 디자이너는 과거의 선배들의 작업에서 영감을 얻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와 현재의 트렌드를 조합하고 버무려서 무언가 다른 것을 창조해 내는 작업이 그래픽 디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래픽 디자인적 호소력의 작동원리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보다 진보된 디자인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까닭으로 오늘,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 이해를 돕는 책을 전문성과 난이도 순으로 세 권 정도 소개하고자 한다.

 

#1. 그래픽 디자인 연대기에 막 관심을 가진 사람을 위한 책

비 오는 날 읽는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

스투디오트레 지음 | 김소정 옮김 |
안그라픽스 | 2013.01.30

 

안그라픽스가 이 책을 내려 했던 이유는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대중적인 관점으로 접근해 누구나 그래픽 디자인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 만화로 되어 있는 역사 책은 다양하게 나와 있지만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만화로 소개한 것은 유일무이하다는 것이 그 생각을 반영한다.

 

구체성이나 정확성의 측면에서는 다소 양보하고 있지만 큰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주 좋은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래픽 디자인에 입문하고자 하는 중고등학생 정도를 타깃으로 한 글쓰기지만 본격적으로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성인 들에게도 입문서로 충분하다. 이 책의 관점이 압축된 문구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슈퍼마켓에서 만나는 포장 디자인이나 매일 보는 신문이나 잡지 등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보다 앞선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를 보는 것이란다.”

 

무릇 그래픽 디자이너를 꿈꾸는 자라면 선학 들의 고뇌와 노력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그 이상의 창작물을 세상에 내어 놓을 만한 포부는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룻밤 사이에 슬슬 책장을 넘기고 읽어도 시간이 남을 만큼 단순 명확함이 장점인 책이다.

 

#2.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 책장 넘기는 재미가 있지만 풍부한 지식으로 가득 찬 책

 

 

어른에그래픽 디자인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

스티븐 헬러, 베로니크 비엔느 지음 | 이희수 옮김 | 송성재 감수 |
SEEDPOST | 2012.12.21

 

 

시드포스트의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된 이 책은 그래픽 디자인 입문서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세상을 확 뒤집어 놓을 만한 획기적인 아이디어 100가지를 쉽게 설명한다는 것은 정말 그 부분에 백과사전적 지식과 명확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일을 해 내고 있다. 그것이 가능한 배경에는 그래픽 디자인의 달인과 최고의 매거진 아트 디렉터가 만났기 때문이다.

 

“영국의 아트/디자인 전문 출판사 로렌스킹의 베스트셀러 중 패션, 건축에 이어 국내에 세 번째로 소개되는 주제는 바로 ‘그래픽 디자인’.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의 학장이자 그래픽 디자인 필드에서 더욱 권위를 인정받는 스티븐 헬러, 다양한 매거진의 아트 디렉터를 역임한 베로니크 비엔느가 그래픽 디자인의 과거부터 현재, 미래를 구성하는 아이디어 100가지에 대해 풀어놓았다. 담백한 텍스트와 풍부한 이미지는 독자들에게 명쾌한 정보를 전달하고, 폭넓은 이해를 돕는다.”

 

〈IDEA 100〉 시리즈의 공통점인 충실한 도판이 제공된다는 점만으로도 매우 끌리는 책이다. 지금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허덕이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있다면 이 책의 도판을 살펴보는 것 만으로도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심화된 지식 습득을 위한 지나치리만큼 자세한 관련자료 소개도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있어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항상 곁에 두어야 할 책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3. 그래픽 디자인 역사의 교과서, 하지만 아름다운 책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

필립 B. 멕스 지음 | 황인화 옮김 |
미진사 | 2011.01.10

 

 

이 책은 1983년에 처음 출간된 이래로 지금까지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픽 디자인을 커뮤니케이션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출발하는 이 책은 매우 진지하고 읽기 수월치 않다.

 

이 책의 저자 필립 B. 멕스는 디자이너이면서 교육자이고 저술가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역사학자가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쓴다면 바로 이 책과 같은 형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철저하게 연대기적이고 공식적인 서술법이 이 책의 권위와 가치를 돋보이게 한다.

 

선사시대부터 디지털 혁명에 이르기까지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1200장의 도판과 함께 소개하고 있는데 그래픽 디자인이 역사환경과 어떤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으며 그 주역이 된 디자이너는 누구인가를 끈질기게 추적해 낸다.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매우 객관적인 관점에서 공식적으로 다루고 있어 딱딱할 수 있지만 진지한 관심을 갖고 대하면 그 지식의 깊이와 넓이에 감탄하게 하는 그런 책이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절대 아니지만 인류가 이미지를 차용해 커뮤니케이션을 꾀해온 역사가 궁금하다면 이 책보다 좋은 책은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